기다림을 보러 간 날
2023년 12월 22일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았다. 작품을 소개한 영상을 보고 공연을 예매했다. 느슨하게 세운 계획이 맞아떨어지고, 공연이 시작되기 전의 공기와 발소리가 들리는 순간까지 기분 좋은 긴장감이 있었다.
극이 시작된 뒤에는 그 기대와 다른 종류의 기다림을 보게 되었다. 고고와 디디는 신발을 벗고, 음식을 찾고, 서로를 타박한다. 그때마다 대화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고 고도를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쪽으로 돌아온다.
질문이 쌓이는데 다음 장면은 시작된다
열심히 집중하려 했지만 대화의 규칙을 쉽게 붙잡을 수 없었다. 어떤 연출이 의문스러워도 생각을 정리하기 전에 다음 에피소드가 시작되었다. 장면의 낯섦과 불편함도 작품을 난해하게 느끼게 했다.
이해가 따라가지 못할 때면 내 사고력을 의심했다. 그러다가 언어를 이해하려는 행위 자체에 의미를 두고 다시 읽기의 필요를 생각했다. 책을 읽을 때도 비슷한 의문을 반복한다는 점을 떠올렸다.
그 반복 끝에 내가 달라질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기대가 남았다. 고고와 디디가 기다리는 고도도 어떤 방식으로든 삶을 이어가게 하는 무언가가 아닐까 생각했다. 작품의 정답을 찾았다는 뜻은 아니었다.
나뭇잎과 신발
1막과 2막 사이에 생긴 나뭇잎은 시간의 흐름이나 생기를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몇 개의 잎만으로 상황을 확신하기는 어려웠다.
고고의 신발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불편하다며 벗어 버리지만 다시 신을 때는 이전의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마음가짐이 달라진 것일 수도, 발이 쉬었기 때문일 수도, 다른 신발이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처음에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읽고 싶었다. 곧 그것만으로 설명하는 것이 위험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맞지 않는 환경이라면 억지로 견디기보다 벗어나 쉬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장면이 한 가지 교훈으로 정리되지 않는 점이 오래 남았다.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답하지 않는 사람들
고고는 어제의 일과 만난 인물들을 잊는다. 디디는 기억을 확인하고 싶어 하지만, 다른 인물들은 질문에 충분히 답해 주지 않는다.
그들에게 답답함을 느끼다가, 내가 모든 것에 답을 요구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았다. 확신을 얻으려는 디디의 태도와 그 확신을 끝내 주지 않는 대화가 함께 남았다.
포조의 독백에서 이어진 생각
포조가 불행과 시간, 삶의 고통을 말하는 장면에서는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거는 듯한 연출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세대의 좋고 나쁨을 간단히 평가할 수 있는지, 예고 없이 닥치는 불행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했다.
눈물에 관한 이야기는 앞서 읽은 『눈물을 마시는 새』를 떠올리게 했다. 그 소설에 관한 감상은 책별 메모로 옮겨 중복을 줄였다. 삶의 고통과 예술에 관한 연결은 『비극의 탄생』 메모와 함께 읽을 수 있다.
원문
고도를 기다리며(연극), 노션 생성일 2023-12-24. 본문에 적힌 관람일 2023-12-22를 글 작성일이나 완독일로 대신하지 않았다. 책을 완독한 기록이 아니라 공연을 본 감상이다.